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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개봉한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여성 중심의 폐쇄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입니다. 박보영, 엄지원, 박소담 등 실력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시대적 억압 속 여성들의 심리적 갈등과 자아 발견을 다룬 서사는 많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겉보기엔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띠고 있지만, 영화는 그 이면에 복합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물 분석’, ‘복선 구조’, ‘상징의 활용’이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경성학교*가 단순한 장르 영화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작품임을 살펴보겠습니다.
인물분석
*경성학교*의 핵심 인물은 외부에서 전학 온 소녀 ‘주란(박보영 분)’입니다. 그녀는 낯선 공간에서 적응하려 애쓰는 동시에, 점차 학교 내부에 숨겨진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주란은 겉보기엔 순종적이고 조용한 인물이지만, 내면에는 분명한 의문과 저항의 씨앗이 자라고 있으며 이는 서서히 터져 나오게 됩니다. 특히 ‘여덕(박소담 분)’과의 관계를 통해 주란의 감정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며, 단순한 피해자나 증인에 머물지 않고 서사의 중심축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연덕 교장(엄지원 분)’은 영화 속 권위의 화신입니다. 그녀는 차분한 말투와 겉치레로 교양을 가장하지만, 실은 소녀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냉혹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여성 권력자의 이중성과 폭력성을 체현하며, 단순한 악역을 넘어선 상징적 존재입니다.
한편, 소녀들 간의 관계도 복잡합니다. 각 인물은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개별적 트라우마와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억압된 체제 내에서의 생존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여덕은 외부에 대한 불신과 동시에 내면의 불안을 지닌 인물로,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위안을 얻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경성학교*의 인물들은 선악의 구분보다는 사회 구조 안에서의 적응과 저항, 내부적 갈등과 자아 찾기의 여정을 보여주며 극에 사실감을 더합니다.
복선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복선’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다양한 단서와 상징을 흘려주며, 후반부의 충격적인 전개가 단지 깜짝 효과에 그치지 않도록 합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장면은 주란의 첫 등장입니다. 그녀가 정문을 지나 안개 낀 정원을 걸어 들어올 때부터, 이곳이 단순한 기숙학교가 아님을 암시합니다. 소녀들이 밥을 먹는 식당에서의 침묵, 모든 일과가 철저히 관리되는 일상 등은 초반에는 단지 엄격한 규율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그것이 소녀들의 자율성 박탈과 실험 대상화였음을 드러냅니다.
교장실 책상 위의 약병, 종종 보이는 간호사와의 은밀한 대화 등도 모두 복선입니다. 이 복선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일 뿐만 아니라, 관객이 처음부터 결말을 예측하고 긴장하며 보게 만드는 서사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시각적 장치 역시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건물은 유럽식 고전 양식을 띠고 있지만 내부는 어두운 조명과 오래된 가구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는 외형의 고급스러움과 내부의 폐쇄성을 대비시키며, 겉과 속이 다른 교장의 이중성과 학교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경성학교*는 복선의 배치가 자연스럽고 치밀하여, 단순히 전개를 위한 장치가 아닌 주제의 전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징
이 영화는 상징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시각적, 내러티브적 상징을 품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상징은 ‘머리카락’입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소녀들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장면은 단순한 병원 수술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아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가 체계적으로 제거되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교복’은 통일성과 순종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소녀들은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며, 이는 개인성과 자유의 박탈을 의미합니다. 이는 특히 주란이 처음 입소할 때 교복을 입히는 장면에서 강하게 드러나며, 외부에서 온 그녀가 학교의 규범에 얼마나 강제로 편입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의 ‘건축물’은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서 하나의 세계관을 구현합니다. 높은 담장, 문이 잠긴 공간, 어둡고 습한 지하실 등은 모두 ‘닫힌 사회’를 암시하며, 이 안에서 소녀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살아갑니다.
심지어 ‘음식’조차도 상징성을 갖습니다. 영양가 없어 보이는 밥과, 규칙적으로 공급되는 무미건조한 식사들은 소녀들이 단지 ‘생존’만을 위해 존재함을 암시하며, 이들이 느끼는 무기력과 체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은 단지 배경이나 연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핵심 주제인 ‘여성 억압’, ‘정체성 제거’, ‘체계적 통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결론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닙니다. 이는 억압 속에서도 자아를 찾아가는 소녀들의 성장기이며, 동시에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성 연대의 이야기입니다.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 정교한 복선 구조, 다층적인 상징은 이 작품을 단순한 장르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때는 등장인물의 표정, 배경의 디테일, 상징의 배치를 유심히 살펴보길 권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단순한 감상이 아닌, 이 영화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